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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간을 견뎠는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그 점에서 술과 인간은 닮았다. 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르익는 시간, 더욱 견고해지는 시간 결국 성장을 말한다. 곡식이나 과일을 증류해 알코올 원액을 뽑고, 이 원액을 시간 엎애 던져두면 결국 알코올은 세월을 품고 깊고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술이 된다. 날카롭던 알코올의 독기는 부드러워지고 온화해진다. 나무가 품을 세월을 오크통 속에서 흡수해 제 것으로 만든다. 무색의 액체가 색을 더하며 인고의 시간을 거치면 결국 모두가 원하는 술이 되는 것이다. 시간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대게는 결국 사라지고 만다. 간혹 살아남은 것들은 그래서 더욱 황홀한 무엇인가를 얻는다. 사람도 술도 마찬가지다.
스카치위스키, 샴페인, 와인 모두 혹독한 시간을 거쳐 경지에 오른 것들이다. 오늘날 고급술이라 불리는 대부분은 시간을 견뎠다.
그런 면에서 진(Gin)은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술이다. 진은 시간과는 상관없다. 숙성을 거치지도 않는다. 시간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저 증류소에서 뽑은 알코올에 노간주나무 열매에 더해 향과 맛을 위한 허브, 갖은 식물을 넣어 에센스를 뽑아내면 된다. 어쩌면 가장 만들기 쉬운 술일 수도 있다. 고급 진과 싸구려 진을 구별하는 게 의미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량한 투명의 보디를 지닌 술은 시간과는 무관한 술이다. 보드카와 진, 소주가 그렇다.
바로 이점이 매력이다. 술은 술이다. 한여름 밤 같다. 설레는 여행지의 밤을 떠올리게 한다. 무게를 잡지 않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그저 즐길 수 있다. 고뇌가 없기에 번뇌도 없다. 그저 설렘에 더해 취하면 그만이다. 누구라도 만나고 싶은 한여름 밤처럼 아무 것이나 섞어도 좋다. 무엇을 섞어도 진은 한밤의 불꽃놀이 같은 짜릿한 칵테일을 내놓는다. 얼음과 소다수 그리고 단맛을 내는 과일, 청량한 오이만 있다면 마티니도, 김렛도 문제없다.
얼음, 레몬, 청량한 소다수 한여름 밤과 딱 알맞은 조합이다. 물론 진이 리드한다면 말이다.
진한 여운을 느끼고 싶은 여름밤엔 결국 진(Gin)이다.

당신만의 관점을 위해 취향을 선물합니다.